새해의 시작과 함께 책방을 둘러보다 책 꽃이에서 ‘화’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읽어본 책이지만 볼 수록 새롭다. 화를 내는 순간, 우리는 불타는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펼치자마자 이 문장이 가슴에 꽂혔다. 틱낫한 스님의 ‘화’는 단순히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화라는 감정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우리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섬세하게 관찰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스님은 화를 적으로 보지 않는다. 화는 우리 안에 있는 아기와 같다고 말한다. 아기가 울 때 우리는 그 아기를 내팽개치지 않는다. 안아주고 달래준다. 화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화가 날 때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분출하는 대신, 마치 어머니가 우는 아이를 안아주듯 자신의 화를 품어 안으라고 한다. 이 비유가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화를 안아준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우리는 대부분 화가 나면 두 가지 방식으로 반응한다. 억압하거나 표출하거나. 억압하면 화는 내면 깊숙한 곳에 쌓여서 언젠가 폭발한다. 표출하면 순간적으로 시원할지 몰라도 관계는 망가지고 후회가 남는다. 스님은 이 둘 다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마음챙김이라는 방법을 제시한다.

마음챙김은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아, 지금 내가 화가 나고 있구나”라고 인식하는 것. 그리고 호흡에 집중하면서 그 감정을 관찰하는 것. 스님은 이것을 ‘화를 껴안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화를 억누르는 것도, 방출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거기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 있어주는 것.
책에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이 나온다. 화가 날 때 “숨을 들이마시며, 나는 내 안의 화를 알아차린다. 숨을 내쉬며, 나는 내 안의 화를 돌본다”라고 속으로 말하며 호흡하는 것. 평화의 조약이라는 개념도 인상적이었다. 부부나 연인 사이에서 화가 났을 때 즉각 반응하지 않고, 24시간 동안 각자 자신의 화를 돌보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이 방법은 특히 관계에서 오는 분노를 다루는 데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틱낫한 스님의 문장들은 시적이면서도 명료하다. “화는 유기물 쓰레기와 같다. 그것을 잘 발효시키면 꽃을 키우는 퇴비가 된다”는 말처럼, 화를 변화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통찰이 곳곳에 스며있다. 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며칠씩 곱씹었던 순간들. 그럴 때마다 나는 상대방을 탓했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말할까, 왜 저런 행동을 할까. 하지만 스님의 말처럼 화의 뿌리는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내 안에 쌓여있던 상처, 충족되지 못한 욕구, 이해받지 못했다는 서러움. 그것들이 작은 불씨에도 큰 불꽃으로 타올랐던 것이다.

이 책은 화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화를 느낀다. 중요한 것은 그 화를 어떻게 만나느냐는 것이다. 화에게 장악당하지 않고, 화를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화는 더 이상 파괴적인 힘이 아니라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다음에 화가 날 때 한번 해봐야겠다고. 즉각 반응하지 않고, 숨을 고르며 내 안의 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평생 해온 습관을 바꾸는 일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화는 적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라고 보내진 신호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신호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진짜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을.
